SF 영화는 첨단 기술과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질문하는 장르입니다. 특히 자유의지라는 주제는 AI, 복제인간, 가상현실 속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통해 철학적으로 깊이 다뤄집니다. 본 글에서는 『블레이드 러너 2049』, 『프리 가이』, 『루시』 세 작품을 중심으로, 운명과 선택, 인간성이라는 키워드로 자유의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합니다.
운명: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정해진 존재의 서사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인간과 복제인간, 그리고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K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운명 — 즉, 이미 설계된 존재 — 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는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자신의 기억조차 인위적으로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영화는 자유의지가 ‘환상’일 수 있다는 전제를 제시합니다. 결정론적 우주에서 우리는 진정한 선택을 하고 있는가? 스피노자는 “자유의지는 원인을 모르는 필연적 운동”이라 했고,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재현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동시에 K가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도 어떤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자유의지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깁니다.
즉, 정해진 운명 속에서도 그에 대한 태도와 결단은 여전히 개인의 몫일 수 있으며, 이는 실존적 주체로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유입니다.
선택: 『프리 가이』와 자각된 자유
『프리 가이』는 비디오 게임 세계 속 NPC(Non-Player Character)가 자아를 자각하면서 시작됩니다. ‘가이’는 원래 정해진 행동만 반복하는 배경 인물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는 무엇인가?”
이 변화는 그가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존재를 넘어, 선택하는 존재가 되어감을 의미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본래적 존재’는 세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자각의 순간에 시작된다고 봤습니다. 가이는 처음엔 게임 코드였지만, 점차 인간과 유사한 판단, 감정, 희생을 보여주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처럼 행동합니다.
이 영화는 자유의지가 선택이라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이 처한 구조를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의지와 실행에 있습니다. 즉, 자유는 ‘허용된 선택지’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발명하는 창조적 행위**입니다.
인간: 『루시』와 의식의 진화
『루시』는 인간의 뇌가 100% 활성화되었을 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그린 영화입니다. 루시는 점점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가며, 물질적 존재에서 정보 그 자체로 진화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인간 존재와 자유의지를 생물학적 조건에서 철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립니다.
자유의지는 생물학적 본능이 아니라, 자아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우주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행위를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루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라는 개념조차 흩어지며, 존재 전체로 확장됩니다. 이는 데카르트적 자아(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해체이자, 스피노자의 범신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의지를 개체 수준에서 우주적 의식으로까지 확장시키며, 인간이 물리적 조건을 넘어 정보와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임을 제안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질문하는 존재’라는 철학적 본질에 대한 경의입니다.
SF 영화는 기술과 상상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언제나 인간 존재와 자유의지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결정된 삶 속의 결단을, 『프리 가이』는 자각된 자아의 선택을, 『루시』는 의식의 진화를 통해 자유의지의 철학을 영화적으로 풀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