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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미 바이 유어 네임 속 사랑의 철학 (정체성과 동일화)

by luby0211 2025. 7. 8.

콜 미 바이 유얼 네임 영화 포스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은 1980년대 북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성의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한 동성 로맨스를 넘어서, 철학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정체성과 동일화, 타자성과 윤리적 경계를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본문에서는 영화 속 장면을 통해 사랑의 철학적 본질을 들여다보며, 자아와 타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랑의 정체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동일화의 철학: “내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콜미바이유어네임》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은유가 아닙니다. 영화 속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그리고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 문장은 사랑을 통한 정체성의 경계 해체를 상징합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서로가 되려 합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엘리오가 올리버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올리버 역시 엘리오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은 라캉의 이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너는 나다”라는 사랑의 진술은, 사랑이 가장 순수할 때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동일화는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나는 나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랑은 나를 지워버릴까? 영화는 이 물음에 정답을 주기보다는 그 질문 자체를 감정의 흐름 안에 배치함으로써, 관객 스스로 성찰하게 만듭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윤리적 경계

이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질문은 사랑의 ‘윤리’입니다. 엘리오는 17세, 올리버는 24세로 명백한 연령차가 존재합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 관계가 과연 윤리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관계를 폭력적이거나 지배적인 관계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엘리오가 먼저 감정을 표현하고, 올리버는 이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는 사랑이 단순히 욕망의 실현이 아닌, ‘타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 임을 보여줍니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윤리는 ‘얼굴’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인지하고 이를 고려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입니다. 《콜미바이유어네임》에서 올리버는 엘리오의 감정을 섣불리 다루지 않으며, 그의 불안과 상처를 존중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감정의 진정성과 상호 배려 위에서 조심스럽게 쌓여갑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로맨스를 넘어, 사랑이 윤리적 선택과 배려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실존주의적 사랑: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 영화는 철학적으로 실존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띱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관계입니다. 그들은 여름이 끝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며, 그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나 알베르 카뮈가 말한 실존주의와 연결됩니다. 인간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야 하며, 운명에 맞서 사랑하고 고통받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엘리오가 벽난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 어떤 대사보다도 깊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올리버와의 시간이 아름다웠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랑이 반드시 영원해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의 진정성 있는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의 존재를 풍부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태도는 실존주의의 핵심—있는 그대로의 삶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깊이 닿아 있습니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은 사랑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 윤리와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정체성의 경계를 넘는 동일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이루어진 윤리적 사랑, 그리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도 진정한 감정을 나누는 실존주의적 태도까지.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사랑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여름,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단순한 감동을 넘어, 더 깊은 철학적 울림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