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은 거대한 벽과 거인이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SF 액션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본질은 정치, 역사, 철학의 복합체입니다. ‘자유’라는 단어는 시리즈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에렌을 비롯한 인물들은 끊임없이 폭력과 억압, 희생과 선택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 글에서는 《진격의 거인》을 통해 자유의 철학, 폭력의 윤리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철학적으로 조망해 봅니다.
자유는 환상인가, 본능인가?
《진격의 거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바로 ‘자유’입니다. 에렌 예거는 거인의 힘을 이용해 벽 밖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며, 이는 단순한 탈출이 아닌, 억압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 욕망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자유는 끊임없이 상대화됩니다. 벽 안의 사람들은 거인으로부터 자유롭고자 벽을 만들었고, 벽 밖의 사람들은 엘디아인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려 합니다.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와 국가가 이를 억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에렌은 이 주장처럼 태생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이며, 세계의 구조적 모순에 맞서 싸우려 합니다. 그러나 니체가 말했듯 ‘진정한 자유’란 단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신념에 따라 스스로 법을 만드는 힘에서 비롯됩니다. 이 맥락에서 에렌의 자유는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자신의 윤리와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실존적 선언으로 읽힙니다. 자유는 선택이고, 그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메시지가 드러납니다.
폭력의 윤리: 정의로운 살인자는 존재하는가?
진격의 거인은 폭력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력을 통해 태어난 정의가 얼마나 불편한가를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에렌은 벽 안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무고한 외부인들을 죽입니다. 그가 한 일은 악인가 선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캐릭터의 선악을 가리는 것을 넘어, 정의와 폭력의 철학적 경계를 탐색하게 만듭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폭력은 결코 진실을 낳지 못하며, 결국 스스로를 소멸시킨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프란츠 파농은 식민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해방의 폭력’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에렌의 행동은 이 두 관점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그는 자유를 위한 해방자이면서도, 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침략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질문입니다. “우리의 평화는 누구의 고통 위에 세워졌는가?” 진격의 거인은 이를 매우 직접적이고 불편하게 보여주고, 폭력의 정당성은 결코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진실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존재의 의지와 실존적 선택
《진격의 거인》의 인물들은 모두 실존적 갈등에 직면합니다. 에렌은 자신이 세계의 파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자유의지'라는 명목 하에 길을 선택합니다. 미카사, 아르민, 라이너, 지크 모두 각각의 신념과 기억,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갑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이 없는 존재이며, 스스로를 정의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바로 이 실존적 조건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좌표’로 상징되는 유전된 기억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규정당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에렌은 과거의 기억을 받아들이되, 그 기억을 선택의 동기로 사용합니다. 이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의 인간 행동’과 닮아 있습니다. 삶은 부조리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행동해야 하고, 행동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격의 거인은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가’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진격의 거인》은 단순히 거인과 인간의 전쟁을 다룬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자유를 향한 의지, 폭력의 딜레마, 그리고 실존적 고뇌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에렌의 선택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자유를 선택하고, 그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격의 거인은 우리에게 이 시대의 철학적 질문을 날카롭게 던지는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