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지만, 우리는 그 개념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주저합니다. 영화는 이 두려운 주제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의미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본 글에서는 『미 비포 유(Me Before You)』, 『코다(CODA)』, 『인사이드 루인』 세 편의 영화를 통해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고, 초월하며, 의미화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허무: 『미 비포 유』와 삶의 선택
『미 비포 유』는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남자와 그를 간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한 절망 속에서 조용히 죽음을 선택하려 합니다. 이 영화는 죽음이 허무의 끝이 아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엄'의 문제임을 제기합니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삶이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 비포 유』는 이 부조리한 삶 속에서 누군가는 끝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삶의 주체가 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죽음을 패배나 도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자 하느냐에 따른 **철학적 결단**으로 제시합니다.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히 '죽음을 선택할 자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결정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 남겨진 삶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허무는 종말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의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초월: 『코다』와 존재의 확장
『코다(CODA)』는 청각 장애를 가진 가족 속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소녀가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죽음을 다루지 않지만, **청각 세계와 무음의 세계**, 그리고 물리적 한계와 감각적 초월의 경계를 다룹니다. 소리 없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거운 책임이 되기도 하고, 해방이 되기도 합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자기 한계를 자각할 때 비로소 영원한 것을 바라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코다』는 청각이라는 감각의 유무가 아니라, **공감과 존재의 깊이**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물리적 한계(청각, 죽음, 장애 등)를 넘어서는 감각적 초월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 영화는 또한 ‘가족의 틀’과 ‘자기 존재의 확장’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는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죽음이란 단절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연결로 가는 문**일 수도 있다는 은유가 숨어 있습니다.
수용: 『인사이드 루인』과 덧없음의 미학
『인사이드 루인(Inside Llewyn Davis)』은 꿈을 좇지만 끊임없이 실패하고, 결국 현실에 마주해야 하는 포크 가수 루인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영화는 명확한 죽음의 장면이 등장하진 않지만, 주인공의 삶 자체가 ‘느린 죽음’에 가까운 현실을 은유합니다. 반복되는 실패,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희망 없는 일상 속에서 루인은 끝내 특별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 영화는 죽음을 비극이나 감정의 폭발로 다루기보다, **삶의 지루하고 덧없는 흐름 속에서 서서히 맞이하는 ‘존재의 퇴색’**을 그려냅니다. 이는 동양 철학, 특히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개념과도 닿아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며, 그 변화 속에서 의미를 붙들지 않고 흘려보내는 자세는 철학적 수용의 태도입니다.
루인의 삶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무대와 관객 없는 노래 속에서 스러지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는 영광을 얻지 못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감내**하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죽음을 ‘거부하거나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되비추는 거울입니다. 『미 비포 유』는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를, 『코다』는 감각을 넘어선 이해를, 『인사이드 루인』은 일상의 무상함 속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철학과 영화가 만나는 그 교차점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품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