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과 시간의 철학: 스토아주의와 실존의 관점에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About Time, 2013)』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닙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통해, 삶의 본질과 일상 속 선택의 의미를 되묻는 철학적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스토아 철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을 중심으로 이 영화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시간 여행은 도피가 아닌 수용이다
주인공 팀은 아버지로부터 "가족 남자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비밀을 전해 듣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는 능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바꿔도 인생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이는 스토아 철학에서 강조하는 '자연의 질서와 운명에 대한 수용(amor fati)'과 연결됩니다. 에픽테토스는 말했습니다. “너의 일이 아닌 것을 바꾸려 하지 말고, 너의 반응을 바꿔라.” 팀은 결국, 미래를 바꾸기보다 현재의 순간을 더 잘 살아가려는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2. 일상의 반복 속에서 찾는 의미
영화 후반부, 팀은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하루를 두 번 살아봅니다. 처음은 평소처럼, 두 번째는 모든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이 장면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매 순간에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과 닮아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현재를 가장 윤리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합니다. 팀은 과거를 수정하는 삶이 아닌, ‘그저 한 번 사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쪽을 택합니다. 이는 인간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3. 시간의 유한성과 존재의 진정성
『어바웃 타임』은 시간의 유한성을 무겁지 않게 그려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팀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이는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성’ 개념과 연결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 정의했습니다. 즉, 우리는 유한함을 인식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팀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포기하는 장면은,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실존의 모습입니다.
4. 결론: 철학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어바웃 타임』은 판타지 영화이지만, 철학적으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의 통제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는 태도입니다. 스토아 철학의 수용과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은, 이 영화를 단순한 멜로드라마에서 ‘철학적 자기 성찰의 교과서’로 승격시켜 줍니다.
우리는 시간을 바꿀 수 없지만,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