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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룬 영화들 (영원, 반복, 결정론)

by luby0211 2025. 7. 25.

시간은 인간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개념입니다. 철학과 영화 모두 시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으며, 특히 영화는 시간의 선형적 흐름을 비트는 방식으로 인간의 정체성과 자유의지를 탐색합니다. 본 글에서는 ‘시간’을 깊이 있게 다룬 세 편의 영화 — 『인터스텔라』, 『어바웃 타임』, 『테넷』 — 을 통해 시간의 본질과 그 철학적 의미를 분석합니다. 영원, 반복, 결정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 속 시간의 철학을 살펴보겠습니다.

영원: 『인터스텔라』와 상대적 시간의 철학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블랙홀, 웜홀, 상대성이론 같은 과학 개념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우주 서사입니다. 특히 블랙홀 근처에서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작용하는 설정은 시간의 상대성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지구에서의 몇 년이 우주에선 단 몇 분, 혹은 반대로 몇 분이 지구에선 수십 년이 됩니다.

이는 인간이 체감하는 시간과 우주의 객관적 시간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며, 철학자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 개념을 상기시킵니다. 베르그송은 물리적인 시간과 인간이 경험하는 내면적 시간이 다르다고 보았는데, 영화는 이를 극단적으로 시각화합니다. 쿠퍼가 딸 머피와 겪는 시간의 단절은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분리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스텔라』는 결국, 사랑과 기억이 시간의 제약을 넘는 유일한 연결 고리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는 시간 속 인간 존재가 과연 물리 법칙에 종속되는가, 아니면 감정과 의지로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즉,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인간은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반복: 『어바웃 타임』과 선택의 윤리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은 타임루프라는 소재를 사용하지만, SF보다는 감성적 드라마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주인공 팀은 특정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삶과 사랑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반복은 그 자체로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지금의 삶을 무한히 반복해야 한다면, 과연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어바웃 타임』은 이 질문을 영화적으로 실현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실수나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던 팀은 점차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완전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반복 가능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선택을 통해 완성되는 삶’이라는 메시지는, 인간 존재가 시간의 반복 속에서도 선택과 책임을 통해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철학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결국 영화는 반복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의 ‘의미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정론: 『테넷』과 시간의 방향성

놀란 감독의 또 다른 시간 실험작인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인버전’ 개념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영화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뒤집으며, 시간의 결정론적 구조에 도전합니다. 주인공은 미래에서 벌어질 사건을 막기 위해 현재를 재구성하고, 이 과정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닌 고리처럼 작동합니다.

이는 물리학에서 제기되는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개념과 철학적 결정론을 접목한 설정입니다. 결정론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테넷』은 이 구조 안에서도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놀란은 주인공이 결국 ‘자신이 미래의 설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순환이며, 원인과 결과가 역전될 수 있다는 개념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간이 시간에 종속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시간의 구조를 인식하고 ‘다르게 살 수 있는’ 존재라는 철학적 전망을 암시합니다.

시간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조건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르게 체험되는 개념입니다. 『인터스텔라』는 시간의 상대성과 초월을, 『어바웃 타임』은 반복 속 선택의 윤리를, 『테넷』은 결정된 구조 속에서의 인간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철학과 영화가 만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간에 대해 더 깊은 사유와 질문을 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