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와 감동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지만, 그 이면에는 치밀한 철학적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아이가 환상 세계를 모험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사이, 어린 존재가 진정한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에서는 《센과 치히로》를 통해 경계 공간의 철학과 실존적 성장의 의미를 탐색해 봅니다.
경계의 세계: 현실과 환상의 틈에서 자아가 흔들릴 때
영화는 치히로가 부모와 함께 터널을 지나 낯선 세계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 터널은 단순한 입구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 기존 세계와 미지 세계 사이의 ‘경계’를 상징합니다.
이 경계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치히로의 정체성이 시험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는 부모의 보호 아래 살아가던 치히로가, 더 이상 아무도 그녀를 ‘지켜주지 않는’ 세계로 던져지는 순간, 자아는 흔들리고 새로운 기준이 요구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의미는 ‘사용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세계의 언어, 규칙,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이 낯선 세계는, 치히로에게 스스로 ‘의미’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 경계는 불교적 무상(無常)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고정된 자아는 없으며,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는 형성됩니다. 치히로는 바로 그 무상의 흐름 속에 몸을 던지며 자아를 새롭게 정의하게 됩니다.
실존의 성장: 아이에서 주체로, 책임지는 존재가 되다
영화 초반의 치히로는 두려움 많고, 수동적이며,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부모가 돼지로 변해버리고,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계에서, 치히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 없이 태어나며, 자신의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해 가는 실존적 존재라고 했습니다. 치히로는 바로 그런 실존적 결단의 연속을 통해 아이에서 주체로 나아갑니다. 일을 얻기 위해 이름을 내주고, 노페이스의 유혹에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며, 최종적으로는 하쿠의 정체를 기억해 내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주체가 됩니다.
치히로의 변화는 마법이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실존적 성장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반복하는 내면의 성장 여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아의 탄생: 이름을 되찾는다는 것의 의미
이야기의 핵심은 ‘이름’입니다. 치히로는 이 세계에서 ‘센’이라는 이름을 받으며 자아를 상실합니다. 그리고 하쿠 역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존재입니다.
이름은 단지 호칭이 아닙니다. 철학적으로 이름은 존재의 좌표이며, 기억과 연결되는 핵심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불렀고, 그것은 세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며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를 뜻합니다.
치히로가 이름을 되찾는 순간, 그녀는 단지 과거의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선언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합니다. 타인의 호명에 의해 정의되던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아는 본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계와 시련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단순한 모험이 아닌, 존재의 본질과 자아의 탄생을 그린 실존적 이야기입니다. 현실과 환상 사이, 안전함과 위험 사이, 순응과 저항 사이의 ‘경계’에서 우리는 진짜 자기를 발견합니다. 치히로는 이름을 잃고, 두려움을 마주하고, 책임을 지며 자아를 만들어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름은 누가 준 것인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진정한 자아의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