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구조를 바꿀 수 있는가 (질서, 계급, 인간 본성)
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설국열차》는 단순한 SF 재난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거대한 철학적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 지구가 얼어붙고 인간들이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공간—끊임없이 움직이는 열차는 세계의 축소판이다. 이 영화는 고도로 조직된 폐쇄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혁명은 기존의 구조를 정말로 바꿀 수 있는가?”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질서, 계급, 인간 본성의 본질을 탐색해 보자.
질서 – 시스템은 혼란보다 중요한가?
설국열차는 철저하게 계급화된 공간이다. 머리칸에는 특권층이, 꼬리칸에는 억눌린 하층민이 탑승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권력의 차이를 넘어, 일종의 ‘질서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열차가 유지되려면 이 계급 구조 역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현실 세계의 보이지 않는 권력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질서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록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일지라도, 구조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안전하다고 믿는 심리. 이는 토마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과 유사하다. 즉, 인간은 무정부 상태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강력한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은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혁명을 쉽게 감행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질서를 잃는 것에 대한 심리적 공백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그 질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질서는 공동체의 안전망일 수도 있지만, 지배자의 권력 유지 도구이기도 하다. 이중적 의미를 지닌 질서 안에서, 영화는 인간이 과연 자유를 택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계급 – 열차는 달리지만 인간은 멈춰 있다
설국열차는 전진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명백한 계급 은유다. 태어난 곳이 꼬리칸이면, 대부분 그 안에서 생을 마감한다. 계급 이동의 가능성이 차단된 세계.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계급 고착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화는 단순히 불평등을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심리를 드러낸다. 꼬리칸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인식하면서도, 기차의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생존'이기 때문이다.
계급이 고정되어 있다는 인식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심리 구조를 만든다. 심리학자 프롬은 인간이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그 자유가 가져올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꼬리칸 사람들 역시 그러하다. 변화보다 익숙한 억압을 택하는 인간의 모습은, 철학적으로도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결국 소수에게는 권력 유지, 다수에게는 체념을 안긴다. 영화가 지적하는 것은 ‘불평등한 구조’ 그 자체보다, 그것이 지속되도록 만드는 ‘인간의 수용과 순응’이다.
인간 본성 – 혁명은 반복되는 시스템인가?
영화의 중심에는 혁명이 있다. 꼬리칸의 주인공은 열차 앞쪽으로 나아가면서 기존의 구조를 뒤엎고자 한다. 그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관객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혁명은 예측되고, 설계되어 왔다는 것. 이는 혁명이 ‘변화’가 아니라, 구조 유지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설국열차》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드러낸다. 인간은 정말 변화를 원할까? 혹은, 변화의 가능성을 연기하는 ‘혁명이라는 반복’을 통해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닐까? 결국 어떤 체제를 무너뜨리더라도, 인간은 또 다른 구조를 만들고, 새로운 권력은 또 다른 억압으로 이어진다. 이는 푸코가 말한 ‘권력은 단지 억압이 아니라, 생산한다’는 개념과 연결된다.
《설국열차》는 단순히 착한 혁명가와 나쁜 지배자를 나누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안에 내재된 이중성과 권력의 유혹, 시스템의 순환성을 냉철하게 비추어낸다. 이 영화는 “누가 열차를 운전하는가?”보다 “그 열차 자체는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결론: 기차를 멈춰야 세상이 보인다
《설국열차》는 명백히 묻는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기차의 앞칸인가, 아니면 기차 바깥의 세상인가?”
영화의 결말은 시스템 안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시스템 바깥의 가능성을 향한 도전이다. 이는 혁명이라는 이름의 내부 투쟁이 결국 또 다른 시스템을 복제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는 그 시스템 자체를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다.
이 영화는 말한다. “혁명은 목적지가 아니라, 구조 밖을 상상하는 힘이다.” 기차는 계속 달리지만, 인간은 그 안에 갇혀 있다. 그 틀을 깨기 전까지는, 어떤 혁명도 결국 궤도 위의 반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