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이 존재할 때, 나는 누구인가? (선택, 자유의지, 정체성)
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영화 《미스터 노바디》(2009)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인간의 오래된 질문을 기반으로, 무수히 분기되는 삶의 가능성과 그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를 철학적으로 탐색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의 다중적 서사를 교차하며 우리가 겪는 선택의 의미와, 그 선택이 ‘나’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이 글에서는 선택, 자유의지, 정체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 영화가 제시하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해석해 본다.
선택 – 무한한 가능성은 자유인가, 공포인가?
《미스터 노바디》는 수많은 갈래의 삶을 보여준다. 부모 중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 선택마다 한 명의 '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나'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결과의 차이가 아니라, 자아의 분기라는 점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건드린다.
우리는 흔히 ‘선택’이 자유의 상징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오히려 선택의 순간이 인간에게 엄청난 부담과 고통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선택은 곧 포기이기도 하며, 수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닫는 행위다. “선택하지 않으면 모든 가능성이 열린다”는 주인공의 말은 파르메니데스적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현실만을 긍정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다중 세계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한 인간의 고민이 있다. “어떤 삶이 진짜인가?” “모든 삶이 나였다면,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선택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능성을 지우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만들어가지만, 그만큼 자신을 잃어간다. 이 아이러니가 《미스터 노바디》의 철학적 핵심이다.
자유의지 – 선택은 가능한가, 결정된 것인가?
영화는 명확히 자유의지를 의심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앞에서 주인공은 선택하지 못한다. 그 순간부터 그는 선택을 회피하는 자아로 분기된다. 이는 인간의 결정이 과연 ‘자유로운 것’인지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 결정론적 세계에서 자유의지는 허상이며, 단지 조건과 환경의 함수라는 관점이 여기서 강조된다.
예를 들어, 물방울이 어디로 튈지는 겉으로 보기에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물리적으로는 정확한 조건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선택도 내면의 자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 유전, 기억, 경험 등 복합적인 조건의 결과일 수 있다. 《미스터 노바디》는 이 점에서 철학자 스피노자의 입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자유의지는 단지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는 완전히 결정론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를 끝까지 붙잡는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온 다양한 삶들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사랑'과 '상실', '고통'과 '의미'를 체험한다. 그는 ‘결정된 삶’ 속에서도 감정과 기억, 인식의 층위에서 진짜 선택을 한다. 이것은 실존주의적 자유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즉, 조건은 외부에서 주어질 수 있지만, 의미 부여는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이다.
정체성 –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인가?
우리는 ‘나’를 단일한 실체로 생각하지만, 《미스터 노바디》는 그것을 해체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삶의 갈래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심지어 기억, 감정, 가치관, 심지어는 언어 사용까지도 변화한다. 정체성이란 연속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회구성주의적 관점이 강하게 드러난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선택된 기억과 경험’의 총합이다. 만약 모든 선택을 할 수 있고, 모든 경험을 했다면, ‘나’는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이 질문은 데리다와 라캉의 철학과도 통한다. 데리다는 ‘차연(différance)’을 통해 정체성이란 것은 끝없이 미뤄지고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말했으며, 라캉은 자아란 타자의 시선에 의해 형성되는 ‘거울’ 임을 강조했다.
주인공은 점점 늙어가고, 기억은 희미해지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던 순간들’을 간직한다. 즉, 자아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라는 철학적 전환이 여기서 드러난다.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느꼈는가’로 자아를 구성한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의미 부여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결론: 나는 선택의 결과인가, 가능성의 흔적인가?
《미스터 노바디》는 선택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행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는 자유의지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선택하지 않음은 가능성의 해방인가, 존재의 부정인가? 정체성은 단일한 실체인가, 선택된 경험의 조합인가?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통찰을 제공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감정의 연속이다.”
어떤 길을 걸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우리를 ‘나’로 만든다. 그러므로 진짜 정체성은 특정한 기억이나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을 감당한 감정의 기록이다.
《미스터 노바디》는 말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