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2016)는 학교폭력, 따돌림, 청각장애, 자살 충동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그 밑바닥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고통과 회복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용서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죄책감에 갇힌 고립된 존재가, 침묵이라는 한계를 넘어 다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실존적 서사입니다.
본문에서는 《목소리의 형태》를 중심으로 실존적 고립, 소통의 윤리, 죽음을 넘은 삶의 복원이라는 철학적 테마를 탐색합니다.
죄책감과 실존적 고립: 나는 벌을 받아야 해
주인공 이 쇼야는 어린 시절 니시미야를 괴롭히고, 그 대가로 자신도 왕따가 되며 사회적으로 고립됩니다. 그 후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하며 살아갑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며, 책임에서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쇼야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를 단죄하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죄책감 속에 고립됩니다.
이 쇼야는 니시미야에게 사과하기 위해 접근하지만, 그것은 타인을 위한 행동이기보다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구원 의식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윤리는 타자를 위한 선택일까, 자신을 위한 용서일까? 이 쇼야는 그 경계에서 갈등합니다.
그의 고립은 사회적 단절이 아니라, 실존의 단절입니다. 누구에게도 말 걸 수 없고, 누구의 눈도 볼 수 없는 삶.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죽음’ 그 자체입니다.
소통의 한계와 침묵의 윤리: 말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가
《목소리의 형태》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적 장치는 ‘말이 닿지 않는 두 사람’입니다. 니시미야는 청각장애로 인해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이 쇼야는 자발적으로 말을 거부합니다. 한 사람은 말을 못 하고, 다른 사람은 말을 안 하는 이 구조는, 단순히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의 소통 불가능성을 은유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말합니다. “윤리는 말 이전에 시작된다.”
즉, 말이 닿지 않아도,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쇼야는 니시미야에게 사과하려 애쓰고, 니시미야는 손짓과 표정, 눈빛으로 반응합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 책임의 윤리를 보여줍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말이 닿지 않아도 마음은 닿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목소리의 형태》가 보여주는 침묵의 윤리입니다.
존재의 무게: 죽음을 지나 다시 살아내는 선택
이 쇼야는 극단적인 선택을 준비합니다.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는 어쩌면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음을 각오한 순간, 진짜 소통이 시작됩니다. 니시미야 역시 자신이 모두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며 죽음을 택하려 하지만, 이 쇼야의 응답으로 인해 그 생각을 멈춥니다.
철학자 카뮈는 말했습니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다.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이쇼야 와 니시미야는 모두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삶은 명확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응답과 관계 안에서 다시 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이어진다고.
이 쇼야는 니시미야에게 손을 내밀며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니시미야는 이 쇼야를 붙잡으며 책임을 나눕니다. 죽음을 넘어서 두 사람은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은 ‘윤리적 관계’를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존재의 복원, 그리고 자기를 용서하는 실존적 도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의 형태》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질문을 마주합니다.
- 죄책감은 어떻게 존재를 파괴하는가?
- 말이 닿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 죽음을 넘어서 다시 삶을 택할 수 있는 윤리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고립되고, 또 얼마나 어렵게 다시 살아내는지를 보여줍니다.
《목소리의 형태》는 묻습니다. “너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철학적인 질문이자, 실존적인 물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