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은 위에서 아래로 음식을 내려보내는 거대한 수직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실험하는 디스토피아 스릴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던지는 질문은 잔혹한 생존 게임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불평등, 인간 본성의 극단성, 그리고 연대와 윤리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더 플랫폼》을 통해 자본과 인간, 윤리 사이의 갈등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을 탐색해 봅니다.
수직 구조와 자본주의의 은유
《더 플랫폼》의 가장 상징적인 장치는 거대한 수직 감옥 구조입니다. 위층부터 아래층까지 수백 개의 층이 있고, 하루 한 번 위에서 아래로 ‘플랫폼’이 내려오며 식사를 제공합니다. 가장 위층은 풍족하게 먹고, 아래로 갈수록 음식은 사라지고, 끝층에 가까운 사람은 굶주립니다. 이 구조는 자본주의 체제의 수직적 위계와 분배 불균형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철학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노동력의 착취’로 유지된다고 보았고, 그 체계는 개인의 의지가 아닌 구조적 강제에 의해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공정한 분배’를 약속하며 내려왔지만, 구조는 그런 선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폭력, 운, 혹은 순응이 필요합니다. 《더 플랫폼》은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평등은 환상이며, 분배는 윤리가 아닌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집니다.
윤리의 실험: 이기심과 연대 사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은 개인이 윤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영화 초반, 고렝은 먹을 것을 남기자고 제안하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습니다. 아래층에 음식을 남겨주는 행동은 이타적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은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홉스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를 위협하며, 오직 강력한 규제(리바이어던, 즉 절대 권력자)에 의해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더 플랫폼》 속 인물들은 법도, 규제도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인 자기 보호 본능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도덕적 선택의 가능성도 보여줍니다. 임마뉴엘 칸트는 인간은 이성을 통해 ‘보편적 도덕률’을 따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고렝은 마지막에 소녀를 위로 보내며 ‘희생’이라는 윤리적 선택을 합니다. 이 행동은 구조를 바꾸진 않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성의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이기심과 연대, 냉소와 도덕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합니다.
실존적 자유와 선택의 의미
《더 플랫폼》은 구조적 영화인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실존주의적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고렝은 자발적으로 이 플랫폼에 들어온 인물입니다. 이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선택’과 맞닿아 있습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렝은 책 한 권(『돈키호테』)만을 가지고 들어오며, 다른 이들이 무기나 도구를 선택한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이것은 지성과 신념의 선택을 상징합니다. 그는 처음에는 중립적 관찰자였지만, 층을 바꾸며 차츰 현실의 폭력과 구조를 체험하고, 나중에는 스스로 ‘의미’를 찾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이 과정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한 인간’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카뮈는 인간이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 행동할 때 비로소 실존한다고 말했습니다. 고렝이 자신을 희생하며 소녀를 올려 보낸 마지막 장면은 그 부조리한 세계 안에서도 ‘나만의 윤리적 응답’을 선택한 실존적 인간의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플랫폼》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수직적 위계, 인간의 이기심과 도덕 사이의 갈등, 그리고 구조 속에서도 선택하고 책임지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묻는 철학적 실험장입니다. 현대 사회 속 불평등과 무감각, 그리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고민해 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지금 다시 봐도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단순한 해석을 넘어 철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더 플랫폼》은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