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칸 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영화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여성성에 내재된 사회적 시선, 욕망의 구조, 자아의 분열,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미디어가 강요하는 ‘이상적 몸’에 대한 일종의 해부입니다.
특히 쾌락을 중심으로 형성된 타자화된 자아, 즉 내가 아닌 ‘내가 되어야 할 몸’이 실제로 태어나는 구조는 관객을 극단적인 불편함과 동시에 철학적 사유로 이끕니다.
이 글에서는 《더 서브스턴스》를 통해 쾌락-여성성-자의식이라는 삼각 구조를 중심으로 ‘욕망이 만들어낸 나 아닌 나’, 즉 타자화된 존재로서의 자아에 대해 탐색해 봅니다.
쾌락은 누구의 것인가: 몸을 둘러싼 욕망의 주체와 객체
《더 서브스턴스》는 외적으로는 바디호러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핵심에는 욕망의 소유권에 대한 질문이 자리합니다.
주인공은 한때 유명한 여성 스타였고, 이제는 퇴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더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신약을 통해 젊고 완벽한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지만, 그 존재는 곧 자기 자신을 침식하는 타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때 중요한 건, 쾌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신체는 쾌락을 향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시선, 관음, 통제된 환상의 만족을 위한 소비재에 가깝습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와 연결됩니다. 실제는 사라지고, 욕망의 이미지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로 생산되어 소비되는 세계.
‘더 서브스턴스’는 바로 이 욕망의 과잉 재현물이며, 쾌락의 객체는 주체가 아닌 사회적 환상이 만들어낸 타자화된 나입니다.
여성성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해체되는 젠더 이미지
이 영화에서 여성성은 고정된 젠더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문화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주인공은 ‘더 나은 나’를 기대하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존재는 과장된 관능성, 포르노그래픽한 외형, 사회가 요구하는 섹슈얼리티의 총체입니다.
즉, 여성성은 사회가 설정한 규격에 맞춰 반복 생성되는 ‘상품’이자 ‘기계적 표준’이 됩니다.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는 수행’을 통해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나’는 그 수행의 끝에서 극단적인 여성성을 표상하며, 여성성 그 자체를 불쾌하게 드러냅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 이미지에 익숙해졌고, 왜 이것을 아름답다고 느꼈는가?”
더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몸이 쾌락과 권력의 매개체로 구성되는 방식을 날것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 허구성과 폭력성을 고발합니다.
여성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시장에서 소비되기 위해 반복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타자화된 자아: 나와 마주한 공포의 실체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나'에 의해 공격당하고, 잠식당하며, 종국에는 존재의 권리조차 빼앗깁니다.
여기서 ‘더 서브스턴스’는 단지 신약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자아의 외주화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이미지, 더 완벽한 외모, 더 젊은 몸을 원하면서도, 그것이 나 자신을 지우고, 타자에게 통제권을 넘겨주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망각합니다.
철학자 라캉은 거울 단계에서 자아는 타자의 이미지로부터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나 아닌 이미지(타자)의 시선 아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서브스턴스》는 이 철학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합니다.
- '내가 되고 싶던 나'가
- '내가 되어버린 괴물'이 되고
- 결국 ‘진짜 나’를 제거함으로써
“나 아닌 나”가 나를 지배하는 역전된 자아의 공포
타자화된 자아는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환상이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욕망하여 들인 존재, 그리고 그 욕망의 결과가 자신을 해체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비극입니다.
《더 서브스턴스》는 바디호러와 페미니즘, 철학이 결합된 강력한 은유입니다.
욕망은 쾌락을 추구하지만, 결국 그 쾌락은 사회가 규정한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자화된 자아’를 탄생시키고 맙니다.
그 자아는 곧 나를 대체하고, 욕망의 괴물로 진화하며, 결국 나 자신을 침식합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짜 당신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질문은, 오늘날 이미지 중심 사회 속 모든 존재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물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