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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메뉴, 예술은 왜 욕망이 되었는가 (창작의 고갈과 소비의 허기)

by luby0211 2025. 7. 8.

더 메뉴 영화 포스터

영화 《더 메뉴(The Menu)》는 고급 요리를 제공하는 비밀스러운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소비자와 창작자의 위태로운 관계를 예리하게 해부하는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미식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현대 예술의 존재 조건, 창작의 진정성, 인간의 소비적 욕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녹아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더 메뉴》를 통해 “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왜 인간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는가”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창작자는 왜 고갈되는가: 예술의 상품화와 소외

셰프 슬로윅은 창작자입니다. 그는 요리를 예술로 여기며, 음식 한 접시에 자신만의 사유와 미학, 철학을 담아냅니다. 그러나 영화 초반부터 느껴지는 것은 그의 권태감, 피로감, 고갈감입니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그것을 감상하거나 음미하지 않고, 사진을 찍고 평가하고, 정보를 과시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이 구조는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 소외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작자는 자신의 노동 결과물로부터 소외되고, 그것을 소비하는 타인에게 조종당합니다. 슬로윅 역시 음식이 "고급 취향의 대상"으로만 기능하는 순간부터, 창작의 기쁨을 상실합니다.

예술은 본래 무목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칸트는 예술의 가치를 ‘무관심한 쾌’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더 메뉴》에서 요리는 더 이상 순수한 표현이 아니라, 구매와 권력의 상징이 됩니다. 소비자는 돈으로 예술을 소유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창작자는 그 안에서 점점 말라가며 자신을 잃어갑니다.

허기의 본질: 우리는 무엇을 채우고 싶은가?

《더 메뉴》의 핵심 대사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진짜 배가 고픈가요?” 영화에 등장하는 손님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입니다. 유명 음식 평론가, 테크 부자, 영화배우, 자칭 미식가. 하지만 그들은 음식의 ‘맛’보다는 그것이 상징하는 지위와 정체성에 더 큰 관심을 둡니다.

이 모습은 철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욕망의 객체(a)’ 개념과 일치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대상이 우리를 만족시켜 줄 것이라 믿지만, 정작 욕망은 끊임없이 대상만을 바꾸며 반복됩니다. 즉, 인간은 실제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을 메우기 위해 ‘욕망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존재입니다.

《더 메뉴》 속 손님들은 진짜 허기가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망, 유일한 경험을 소비하고 싶은 허영심,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은 결핍에 이끌립니다. 그들은 음식이 아닌, ‘자기 자신’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슬로윅 셰프가 결국 예술과 소비자 모두를 파괴하는 길을 택하는 것은, 이 욕망의 순환을 끊고자 한 절망의 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 수용자는 누구인가: 관객의 책임

슬로윅이 유일하게 살려주는 인물은 마고(본명: 에린)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요리에 감탄하지도 않고, 과장된 포장에도 감흥이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그녀에게 “진짜 배고픈 사람이었군요”라고 말합니다.

마고는 서비스 노동자이자 비주류 계층입니다. 그녀는 음식의 메시지를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먹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슬로윅이 찾던 ‘진짜 관객’입니다. 그는 결국 진정한 수용자가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 선언하며, 자신과 그 세계를 불태웁니다.

이 지점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예술의 아우라’ 개념과도 통합니다. 복제 가능한 시대의 예술은 아우라를 잃고, 소비와 해석의 대상이 됩니다. 《더 메뉴》는 이러한 소비 시대 속에서 예술은 수용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느끼고,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예술은 언제든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더 메뉴》는 단순한 풍자나 미식 스릴러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현대 예술의 소외, 욕망의 무한 반복, 그리고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균열을 철학적으로 탐구합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 정말 그것을 이해하고 느끼려는가, 아니면 그저 소유하고 평가하고 싶어서일 뿐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예술은 왜 욕망이 되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예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그 욕망의 본질을 돌아보게 합니다.